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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 편 지

+ 천국편지 / 너의 가슴의 경우로 올라가라 & 너는 너 자신의 진실을 부인한 적이 있느냐?

 

 

 

천국편지 / 너의 가슴의 경우로 올라가라


너의 가슴의 경우로 올라가라

Rise to the Occasion of Your Heart


Heavenletter #6387 - God

Published on: July 22, 2018

http://heavenletters.org/rise-to-the-occasion-of-your-heart.html




 

신이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가슴은 지능 앞에 온다. 이것이 너를 실망시키느냐? 나는 지능이 아니라, 문제의 그 가슴이다. 세상은 지능의 선호에 무게를 두는 둣 보인다. 오, 확실히, 가슴은 그 모든 것에 대해 넉두리를 할 수 있지만, 가슴과 모든 이들에 대한 고려는 지능 전에 온다.


너는 내가 “너의 형제를 너의 큰 자신your Self처럼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너는 내가 “너의 지능을 너의 큰 자신처럼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모든 수단으로, 지능을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나는 결코 너의 모든 힘으로 지능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너의 가슴을 항상 그 자신의 비전으로 남겨두고, 결코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늘날 자주 보이는 것보다 더 똑바로 될 것이라고 너에게 말할 만큼 갈 것이다.


현재로서는, 너는 너의 가슴의 너무나 많은 것을 주어버릴 수 있거나, 아니면 너는 너의 가슴을 너무나 많이 저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너는 앞뒤로, 좌우로 가며, 너의 가슴은 네가 직선으로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연스러운 가슴이 되는 것으로 가도록 압박을 받는데, 내가 그것을 이런저런 일로부터 개입 없이 만들었을 때에 말이다.


현재로서는, 너의 자연적 관용이 왜곡되었을 수 있다. 너의 가슴의 자연적 나타남이 부과되었을 수도 있다. 인간의 가슴은 심문받거나, 세상의 합의를 나타내도록 의도되어 있지 않다. 인간의 가슴은 영구적 파마가 주어진 머리손질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신의 글쓰기 안에서 일어나는 특수성은 없다.


가슴이나 무언가가 단지 하나의 정확한 방법으로 그 자신을 드러낼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버려라. 실제로 너의 가슴이 그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유일한 하나의 자연적 방식이 있으며, 그게 그것이 있는 방식이다.


자연이 드러내게 된 것을 제외한다면 자연 속에 무엇이 자연스러울까? 금발이 붉은 머리나 검은 머리보다 더 좋은가? 인간 존재들은 그들의 기호들을 가지고 있다. 기호들은 양식style에서 오고 갈 수 있는데 — 오늘은 여기 있지만, 내일은 없어진다.


자유가 울리기를. 그래 부디, 사랑하는 이여, 자유가 울리게 해라.


자연은 그것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이 좋아하는 것은 상당히 명확하다. 세상이 좋아하는 것은 순간의 생각에 따라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며, 어쩌면 심지어 한 순간의 생각조차 아닐지도 모르는데, 한 순간의 변덕처럼 말이다.


오늘날 문제되듯이 신과 자연으로 올 때, 태양은 변함없이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진다. 자연은 그 자신의 의지로 가며,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지 않는다.


자연 속에는 일관성이 있고, 전형적으로 자연은 이익의 동기에 기준해서 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너는 홍수나 지진이 너에게 너의 생명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일어난다. 대개 태양은 나뭇잎들 사이로 비추며, 태양은 너를 따듯하게 하고, 바람은 너를 식히며, 그리고 물론 밤은 태양이 지고 난 후에 너를 편하게 한다.


삶은 일반적으로 너에게 단연코 그것의 최선을 준다. 너는 항상 그것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신이여 감사합니다!”를 말하기 위해 한 순간 멈추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이것은 너 자신에게 신의 은혜와 풍요로움과, 내가 모든 이들에게 관대하게 수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계절에 딸 뽕나무 열매들, 모아야 할 모든 종류의 과실들, 거둘 다른 맛있는 곡식들이 있다. 하나의 축복에 이어 다른 축복을 따야 할 풍부한 기회들이 있다.


가끔, 신에게 감사하기 위해, 그 재미를 위해, 구부려라.


오눌, 푸른 하늘에 대해 신에게 감사해라. 내일, 구름 낀 하늘을 위해, 또는 느닷없는 천둥소리에 대해서도 신에게 감사해라.





너는 너 자신의 진실을 부인한 적이 있느냐?


너는 너 자신의 진실을 부인한 적이 있느냐?

Did You Ever Deny Your Own Truth?


Heavenletter #6388 - God

Published on: July 23, 2018

http://heavenletters.org/did-you-ever-deny-your-own-truth.html


 


신이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네가 너 자신의 진실성에 따라 살지 않을 때, 네가 사랑의 진실을 부인함으로 한 친구를 기분 상하게 할 때, 네가 너 자신이 될 것으로 믿게 될 한 친구보다 너 자신이 낮음을 발견할 때, 네가 불필요하게 한 친구의 가슴에 상처를 줄 때 — 너는 결코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너는 그것을 저질렀는데 – 그때 너는 이것이 진실로 하나의 말의 실수였는지를 의문한다.


네가 너의 우정에 대한 너의 착각이 실제로 지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이 가능한가? 너는 모든 것이 잘 있지 않을 때 모든 것이 잘 있는 척하는 “우리가 하는 척하자”의 게임을 하고 있었느냐?


만약 네가 그처럼 심란하지 않았다면, 이 관계가 더 일찍, 더 정직하게 끝날 수 있었고, 이제 너는 네가 가지고 다니는 충실성의 감각을 지니지 않을 것인가?


너는 너 자신에게 진실해지게 되어 있다. 이 경우에, 너는 너 자신에게, 혹은 너의 사랑하는 이에게, 심지어 나에게 진실하지 못했고, 그것은 네가 너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너는 결코 어느 누구에게든 허위가 되게 되어 있지 않으며, 그러나 어쨌든 너는 그것으로 곧바로 떨어졌다.


그래, 삶에서 솔직해지는 것은 항상 네가 그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듯이 쉽지 않다. 어쨌든 너는 얽히게 되었는데, 마치 네가 충성의 한 조각도 없는 누군가였다는 듯이 말이다.


너는 전에 한번 이 교훈을 배운 경우를 가졌다. 너는 유감이지만, 첫 번째 그 교훈을 배우지 못했고, 너는 두 번째에 대해서도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오, 아니, 네가 너의 가슴으로부터 그러한 거리로 멀리 떨어질 것임을 — 너는 믿을 수 없다.


너는 다음과 같이 가는 어린이들의 운문을 기억한다.


“네가 심지어 거짓말을 말했니? 그래, 너는 그랬다. 난 네가 그랬음을 알고 있어. 넌 너의 어머니의 찻주전자 뚜껑을 깨뜨렸지.”


네가 아이였을 때, 너는 너의 어머니에게 깨진 찻주전자 뚜껑의 진실을 시인하는 것의 올바름을 이해했다. 너는 네가 너의 어머니에게 그 진실을 빚졌음을 알고 있었지만, 너는 심지어 최소한 너 자신에게도 진실하지 못했다.


너 자신의 가슴의 상처가 지금 엄청나게 커졌다.


당시 너의 아동기로 돌아가서, 너는 너의 위치의 명확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너 자신의 진실성을 부인하는 것은 너의 가슴을 둘로 나누는 재앙이다.


너는 너의 진정한 사랑의 느낌들을 존중하지 못했다. 너는 너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했다. 너는 너의 사랑을 부인했다. 너는 너의 조급한 사랑의 부인을 얼마나 깊이 후회했느냐, 공개적으로 크라이스트에게 그의 충성을 부인했던 성경 속의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오, 허위진술이란. 오, 가슴의 통증이란. 오, 수치란.


베드로에 대해서, 너는 만약 한 개인으로서 네가 베드로의 죄책감의 그 깊이를 가능하게 느끼게 된다면, 어쨌든 너의 상처가 그를 그의 죄책감의 강도로부터 속죄할까를 의문한다.


나의 어린이들의 누가 정말로 그가 무고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 모든 이가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해 다른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또 다른 의미에서, 모든 이가 무고하다.


어쩌면 너의 이름은 베드로의 이름으로 겹쳐졌을지 모르며, 따라서 너는 늦게나마 그의 부담의 일부를 나를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가? 누가 가치 없는 죄책감이 나누어지고 감소되는 그 정도를 아는가?


만약 네가 반성할 때 베드로의 고뇌하는 고통을 해방시키기를 요청받았다면, 너는 격렬한 노No를 말하겠는가? 너는 정말로 그럴 것인가? 너는 그의 오류나 그의 약점이 그 자신에게만 속한다고, 어쨌든 너에게는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너와 너의 형제는 이미 하나One이다. 죄책감은 이미 지구의 얼굴로부터 제거하기 위한 너의 일이다. 죄책감은 어떤 시간의 낭비인가. 사랑하는 이여, 너의 관심을 죄책감에 두지 마라. 죄책감이여, 썩 꺼져라.


같은 이유로, 어떤 소위 다른 이로 부르는 자에게 돌들을 던지는 것은 너의 좋은 은혜 속에 있지 않다. 다른 이가 없다. 하나One가 있다.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11523 신의 편지/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