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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 편 지

+ 천국편지 / 지고의 위대함이 너 안에 놓여 있다 & 삶으로 부르는 이것

 

 

 

천국편지 / 지고의 위대함이 너 안에 놓여 있다


지고의 위대함이 너 안에 놓여 있다

Supreme Greatness Lies within You


Heavenletter #6482 - God

Published on: October 25, 2018

http://heavenletters.org/supreme-greatness-lies-within-you.html



 

신이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생각의 새롭고, 더 멋진 방식들로 열려라. 너는 아직 네가 누군가 앞에 – 최소한 너 앞에 – 놓여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넘어, 삶이 너 앞에 무엇을 놓을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네가 뛰어넘을 수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못한 경계들을 넘어가기 위해 네가 더 높은 산들을 올라가라고 요청받고 있는지를 누가 설명할 수 있으랴?


네가 바랐던 것이 네가 그것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했듯이 항상 그처럼 멋지게 나타나지 않는 듯이 보였던 것이 삶에 이미 일어났을 수 있다. 네가 처음에 외쳤던 것이 네가 상상했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지게 나타난 것이 이미 일어났을 수 있다.


여전히 너는 삶이 항상 종달새가 아님을 이미 체험했다. 가끔 너에게 일이 너무나 버겁다.


그리고 너에게 최고의 위대함이,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그러나 네가 생각할 수 있고, 생각 해야만 하며, 생각하게 될 것보다 더 큰 것이 요청될 수 있음이 또한 일어날 수 있다. 너는 어떤 산곡대기로 더 높이 올라가는 너 자신을 발견하는데, 네가 너의 내부에 신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너 자신을 네가 가능하다고 알고 있던 것 보다 더 크게 열어라’라는 말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너는 네가, 그리고 다른 모든 이가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 것으로 매달릴 수 없다.


아무 것도 네가 생각했던 것이 될 필요가 없다. 너는 오늘 새로운 마음이 될 수 있다. 너 자신을 발견해라. 빛 가리개를 걷어라.


모든 노래가 끝나고, 새로운 노래가 시작된다. 얻는 것 안에 힘이 있고, 상실로 부를 수 있는 것 안에 힘이 있다. 어느 경우든, 삶은 너 앞에서 그 자신을 펼친다. 너 앞의 삶은 하나의 미지unknown이다.


새로운 요청받지 못한 길을 걷는 것은 또한 확장된 보상을 나를 수 있다. 가능성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제하는 것이나 심지어 멋진 보상으로부터 어떤 것을 배제하는 것은 너의 일이 아니다. 너 자신을 놀라게 해라.


신의 자발성을 삶으로 인정해라. 너는 무언가를 닫을 필요가 없다. 동시에, 삶 그 자체가 그것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너는 삶의 의지로 양보할 것을 요청받을 것이다.


토네이도는 너의 가슴의 의지 위로 주권을 가져갈 수 있다.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하려 해도, 너의 개인적 의지가 바꿀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사랑하는 이여, 가끔 너는 네가 아무리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상관없이, 삶이 그것인 것이 되게 할 필요가 있다. 자만심이 추락에 앞서 갈 수 있다.


너는 네가 양보해야만 하는 것이 신의 의지라는 말을 들었을 수 있다. 부디 내가 나의 의지를 너의 의지에 대항해서 놓지 않음을 알아라. 가끔 너의 삶이 어떤 문제로 사로잡힌다. 너의 관련성이 너에게 상관없이 우연히 일어난다.


그렇다 해도, 얼마나 그 상황이 불공정하고 부당하게 보일 수 있다 해도, 여전히 너에게 더 큰 확장을 가져오는 상황으로부터 무언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상황이 또한 가져올 수 있는 눈물들에 상관없이 말이다. 너는 선택권을 갖지 못할 수 있지만, 너의 어깨를 으쓱이고, 멋진 우아함으로 나갈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여, 너는 목소리를 올리기까지 네가 얼마나 높은 음을 낼 수 있는지를 진실로 알지 못한다.


가끔, 불가능한 상황들로부터, 영웅들이 태어나고, 여기에 네가 있다. 너는 결코 네가 너 안에 위대함을 가졌는지를 알지 못했다. 나는 알고 있고, 여전히 여기 네가 있다. 너는 너 안에 위대함을 정말로 가지고 있다.


네가 너 자신과 삶을 네가 전에 결코 상상하지 못했지만, 네가 하는 새로운 웅장한 방식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너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을 발견한다. 나와 함께 있어라.




 


삶으로 부르는이것


삶으로 부르는 이것

This That Is Called Life


Heavenletter #6483

Published on: October 26, 2018

http://heavenletters.org/this-that-is-called-life.html



신이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삶이 너에게 무엇을 요청하든, 그것은 너에 대해 요청된다. 우리는 삶이 할부금으로 너에게 요청한다고 고려할 수 있다. 삶은 그것이 떨어질 때 너에게 떨어진다. 너는 너의 삶을 되찾을 수 없다. 삶은 변할 수 있지만, 너는 너의 삶을 단지 새로운 것과 같은 것으로 교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삶은 밀려왔다 밀려간다.


너의 삶은 너의 기대들을 넘어 있을 수 있다. 가끔 너는 너의 삶을 너의 큰 걸음으로 받아들인다.


네가 너의 삶을 바로 너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마법과 기적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때들이 있다. 너는 이 소위 삶으로 부르는 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모르며, 너는 그것에 대해 나에게 감사한다. 너는 네가 운이 좋음을 알고 있다. 너는 너의 행운의 별들로 감사한다. 한 순간도 너는 너의 삶을 조금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말할 때에도, 너의 삶은 공중제비를 넘을 수 있거나, 아니면 너의 자동차가 진흙탕 속에 처박히거나, 아니면 너의 자동차가 스스로 그곳을 빠져나오고, 해가 너에게 비추면서, 너는 금실로 짜여 진다.


무엇이 네가 될 수 없는가? 무엇이 너를 눈부시게 할 수 없는가?


아니면 너는 고통을 가지며, 다른 누군가는 고통을 갖지 않는다. 삶은 무엇이 될 수 없는가?


무엇에 너의 삶이 의존하는가?


삶을 위한 너의 조리법은 무엇인가? 삶은 우연인가, 아니면 삶은 설계에 의한 것인가?


너는 네가 너의 삶에 대해 어떤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얼마나 많은 것을 너는 모르는가? 가끔 너는 바다로 되던져진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느끼며, 단지 나갈 수 없거나, 어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없는 듯이 느낀다. 네가 있는 곳이 네가 있기로 된 곳이 틀림없다. 너는 생각할 다른 무엇을 알지 못한다. 네가 너무나 많은 것을 요청하는가? 너는 충분한 것을 얻거나, 아니면 너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느냐?


어떤 작가를 너는 너의 이야기의 저자가 되기를 선택하겠는가? 어떤 고전 작가가 너의 이야기를 썼을 수 있다고 너는 믿느냐? 어떤 언어로 너의 이야기가 씌어 지겠는가? 너는 무엇을 너의 소설로서, 혹은 영화로서, 혹은 TV 시리즈로서, 혹은 무대의 연극으로서 쓰겠는가? 어떤 배우가 그 주인공을 연기하겠는가? 너는 어떻게 너의 각본을 다시 쓰겠는가, 아니면 너는 쓸 것인가?


지금 무엇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너는 너의 각본을 끝맺는가?


어떤 제목을 너는 너의 삶의 이야기로 줄 것인가?


만약 네가 전령사 천사들을 듣기를 원한다면, 너는 그것을 하는 방법을 알 것인가?


너의 삶이 정체되어 있는가?


너의 이아기는 어떤 장르인가 — 픽션인가, 아니면 논픽션인가?


너는 동화 속에, 아니면 완전한 드라마 속에 있을 수 있는가?


너의 삶의 이야기가 과학 소설인가?


만약 네가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다면, 도대체 너는 누가 될 것인가?


삶에서 어떤 역할을 너는 지금 원할 것인가?


너는 이미 너의 삶을 이루었는가?


가끔 너의 삶이 양식화 되었다고, 아니면 너의 삶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너에겐 너의 삶이 총천연색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너의 삶은 무광택 처리 이상이 되었고, 너의 삶이 추방되었다.


너의 삶이 어떤 다른 식으로 일어났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한가? 만약 그랬다면, 그것이 그때 너의 삶이 되었을 것인가?


네가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 너의 삶이 정말로 일어났는가, 아니면 그것이 큰소리로 읽혀졌는가? 만약 그렇다면, 누가 그것을 읽었는가, 아니면 그것이 컴퓨터 기록이었는가?


너는 다차원적 삶을 살아왔다. 너의 일부는 무한히 기록되기를 좋아할 것인 반면, 너의 일부는 무성 영화 속에서 연기하기를 더 좋아할 수 있거나, 아니면 전혀 아니다.


너는 망아지를 탄 너의 아동기 사진을 가졌는가? 너는 왜 이것이 그처럼 아동기의 필요한 부분으로 고려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네가 그러한 사진 없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


사진이 있든, 그것에 상관없이, 어쨌든 너는 정말로 존재하느냐?


너는 이 몸속에 갇혀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것은 실로 하나의 꿈일 수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너의 꿈을 꿈꾼 것이 될 수 있다.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11815 신의 편지/1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