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 편 지

+ 천국편지 / 고요하지만 여전히 들린다 & 해병대의 하사관

+ 쉬 리 + 2016. 9. 16. 14:53

 

 

 

천국편지 / 고요하지만 여전히 들린다


고요하지만 여전히 들린다

Silent, Yet Heard


Heavenletter #5772. - God  .  September 13, 2016

http://heavenletters.org/silent-yet-heard.html

 

 

 

 

신이 말했다.


신의 글Godwriting은 매우 개인적인 일이다. 그것은 하나의 영혼과 나 사이에 있다. 그것은 심지어 사이에도 있지 않은데, 우리가 둘이라고 말해진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는 자와 하나의 받는 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어떻게 하나됨Oneness을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주는 것의 하나됨Oneness을 받는 것으로부터 분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 나는 너에게 나의 가슴을 주고, 너는 너의 열린 가슴 안에서 내가 주는 것을 받는다. 네가 내가 진동시키는 것을 받을 때, 너는 너의 관심을 내게 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네가 주는 관심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 조만간 그것은 네가 주는 너의 사랑이다. 너는 그보다 낮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하나됨Oneness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이냐, 그러나 나는 자주 우리들을 너와 나로서 말한다. 이것은 연설의 양식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를 둘로 나누는 이것은 지구상에 그 자리를 가지고 있다. 네가 프랑스에 있을 때처럼, 너는 프랑스의 언어로 말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지구의 언어로 말한다. 너의 가슴은 너의 언어가 무슨 언어든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쩌면 행동에서 하나됨Oneness으로 부를 수 있다.


존재하는 더 깊은 진실이 있는데, 더 깊은 수준에서는 네가 어떤 언어 속에서도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너는 아무 언어가 필요 없다.


우리는 지능을 걸러뛴다. 지능은 바로 배워지고 현명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슴은 순수하고 열려 있다. 나를 요구하는 것은 너의 가슴이다. 너의 가슴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너는 너의 가슴 안에서 나를 포용한다.


나는 너의 가슴이 나의 소리를 듣는다고 말하지만, 너의 가슴은 이미 나를 알고 있는 것 이상이다. 너의 가슴은 지능이 따라올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나를 포착한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됨Oneness이 사랑으로 부르는 언어로 말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가슴들이 터치하며, 터치된다. 무언가가 일어난다.


무언가가 일어났다. 우리는 가까이 오지만, 어떤 말도 우리의 하나 된 가슴을 표현할 수 없다.


너는 하나의 진동을 퍼 올리고, 그것을 말들로 번역하지만, 우리는 말들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그것은 마치 네가 샘으로부터 석유를 퍼 올리는 것과 같지만, 내가 너에게 지금 말하는 것은 무언가를 전혀 퍼 올리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는 경이로운 무언가가 부글거리며 올라온다고 성실하게 말할 수 있고, 우리는 그 부글거림을 알고 있다. 여기에는 노력이 없다. 단지 영속적인 순수한 진동이 있을 뿐이다.


삶에서 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너를 통해 진동한다. 너는 그것을 콧노래로 부른다. 너는 그것을 노래 부른다. 너는 그 이름을 알 필요가 없다. 또 다른 때에 너는 그 곡을 기억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너 안에 깔려 있다. 그 곡은 너의 가슴의 저수지 속에 있다. 그것이 고요하지만, 그것은 들린다.


너의 가슴은 제한이 없다. 너의 가슴으로 경계들이 없다. 너의 가슴은 단순하다. 마음은 복잡하다. 너의 가슴이 유쾌한 반면, 너의 지능은 더 영리해질 수 있고, 말하자면 그 내용을 뽐낼 수 있다.


가슴과 마음 둘 다가 그것들인 것이다what they are. 그것들은 둘 다 뛰어나지만, 말이 없는 인간 가슴은 지능이 뒤따를 수 없는 곳으로 간다. 우리는 사랑으로 부르는 기회 속에서 관계한다. 우리는 그것 안에서 심지어 관계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이다We ARE It.


우리에게는 정도란 것이 없는데 우리가 무한하기 때문이고, 우리의 사랑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 속에서 교신한다. 우리는 교감한다. 우리는 지구를 모든 것이 공존하는 하나의 교감commune이라고 부를 수 있고, 사랑이 천사들의 날개 위로 난다.


너는 의식적으로 우리의 교감의 이 앎을 가지고 있지 못할 수 있지만, 그것이 너의 체험이 되었는데, 네가 그 이름을 알든 알지 못하든 말이다. 우리는 이방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 적이 없다. 우리의 가슴들이 하나로서 뛴다. 우리의 가슴들이 지구상의 나비의 날개들처럼 박자를 맞추며, 거기에는 정적이 있다.


이것이 신의 글Godwriting이고 – 네가 무슨 이름을 선택하든, 신의 사랑Godloving인데, 그러나 나는 내가 너를 자유롭게 할 때에도 나의 가슴 속에서 너를 꽉 안고 있다.



해병대의 하사관

해병대의 하사관

A Sergeant in the Marines


Heavenletter #5774. - God  .  September 15, 2016

http://heavenletters.org/a-sergeant-in-the-marines.html


신이 말했다.


가끔 언어는 그 자신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분노로 허약한weak with anger’은 이러한 완벽하고 정확한 표현들의 하나의 예이다.


분노는 단연 약화시킨다. 분노로 강할 때 너는 입에 거품을 물 수 있다. 너의 손이 떨릴 수 있다. 너는 장화 속에서 떨고 있는데, 의식적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그러나 분노로부터, 두려움의 또 다른 형태로부터 떤다.


네가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왜 네가 분노로 가득 찰 것인가? 네가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도대체 왜 네가 벌건 뜨거운 분노로 곧장 기록을 깨뜨릴 필요를 느끼느냐?


네가 전적으로 원하는 합리적 분노에 대해 말해보자. 너는 분노의 열정 없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달성할 것이다. 너는 너의 분노를 합리화로 가속시킬 수 있다. 너는 분노 없이, 자기 합리화 없이 훨씬 더 잘 너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너는 네가 해병대의 하사관이고, 사병이 너에게 ‘서Sir’라고 부르는 것을 잊어버릴 때, 그에게 호령을 하겠는가?


네가 화가 날 때, 너는 친절하지 못하다. 너는 화를 터뜨린다. 화는 화를 낳는다. 화는 너를 권위적인 깡패로 만들 수 있다. 모든 이가 그의 즉각적 화를 합리화한다. 너는 그것을 피할 수 없는데, 네가 분노의 명령 아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화를 낼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허약함으로 불러라. 너는 그것을 힘으로 부를 수 없다.


너는 행동 속에 있는 다른 이들로부터 분노를 관찰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다. 너는 그들의 화를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향하는, 분노로 벌게진 부모를 보았다. 너는 어린 아이들에 대해 아첨할 수 있다. 너는 또한 그 사랑을 숨기고, 열띤 분노로 그것을 대체한 화난 부모에게 아첨할 수 있다.


네가 격분할 때, 네가 격분해야 한다면, 너의 격분으로 지배권을 주지 않으면서, 베개를 내려쳐라.


분노는 세상으로 큰 공격이다. 그것의 많은 것이 있다. 그것의 너무나 많은 것이 있다.


격분은 증오와 같다. 너는 정말로 격분하기를 원하느냐?


너의 분노를 세상으로 영향을 끼쳐야 할 필요 없이 꺼지게 하는 방법을 찾아라. 너의 분노로부터 낙진을 맞을 너 주위나 너로부터 멀리 있는 그 모든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


분노는 다치게 하는데 사용된 원자탄과 같다.


어쨌든 네가 다쳤으며, 너는 김을 빼려고 한다. 이것은 치료법이 아니다.


너의 분노에 대해 책임을 져라. 다른 누군가는 너의 분노에 대해 책임이 없다. 또 다른 것은 너의 격분에 대한 연막전이다. 너의 행복이든 불행이든, 너의 사랑으로의 분출이든, 너의 분노의 분출이든, 너의 내부로부터 온다. 그것을 인정해라. 너의 뜨거운 분노에 대한 합리화가 없다. 너의 모든 이유들은 합리화가 아니다.


너는 너의 분노가 너의 순진한 아이가 진흙탕이 되는 것으로부터 온다고, 혹은 네가 너의 분노를 일으킨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지만, 너의 분노는 너의 내부로부터 표면화한다.


너는 나중에 네가 안정될 때 너의 분노에 대해 자랑스럽게 느끼느냐? 아니다. 전혀 아니다.


또 다른 내리칠 백을 찾아라. 달려가서 속도를 위한 새로운 기록을 세워라. 나무를 패라. 분노를 마치 이것이 너를 챔피언으로 만든다는 듯이 표현하거나 분출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마라. 그것은 너를 너 자신의 적의의 피해자로 만든다.


너는 정말로 너의 삶을 화를 내면서 보내고 싶으냐? 만약 아니라면, 그럼 너의 진화의 사다리를 올라가서, 다른 각도로부터 보아라.


분노는 네가 보는 방법으로부터 온다. 너의 분노는 무언가를 마스크를 씌우는데, 너의 분노의 폭발을 통해 너의 분노가 정말로 어디서 오는지를 가리면서, 너의 분노를 베스비우스 산과 똑같은 연기 속으로 보내면서 말이다.


너는 모든 것이나 어떤 것을 좋아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너는 분노로 대답할 필요로 없다. 만약 네가 화가 나지 않았다면, 너는 너 자신을 표현하고, 인간적으로 대응하는데 훨씬 더 나은 일을 할 것이다. 너는 불을 키고, 대기를/분위기를 다치게 하는 그 성냥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내부의 바뀜 외에 분노에 대한 치료법을 알지 못한다. 너로부터 더 큰 이해가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확실히, 너를 외관상 화나게 한 것, 그리고 너의 분노 뒤의 그 진짜 주모자에 대한 더 큰 이해 말이다.


친애하는 성급한 이들아, 너희 볼륨을 낮추어라.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9769 신의 편지/1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