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편지 / 나의 다정한 이들아, 선원의 삶이 너희를 위한 삶이다! & 아, 자유여!
천국편지 / 나의 다정한 이들아, 선원의 삶이
너희를 위한 삶이다!
나의 다정한 이들아, 선원의 삶이 너희를 위한 삶이다!
The Life of a Sailor is the Life for You, My Hearties!
Heavenletter #5862. - God . December 12, 2016
http://heavenletters.org/the-life-of-a-sailor-is-the-life-for-you-my-hearties.html
신이 말했다.
네가 승선한 것은 삶이다. 이제 삶이 보장되었다. 낡은 삶은 끝났다. 어제는 결코 없었다. 오늘이 여기 있고, 이것이 모든 이들의 새로운 날이다. 오늘이 바로 이 순간 너에게 그 자신을 열고 있고, 지금부터 말이다.
새로운 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라. 네가 갖는 매일은 하나의 신선한 시작이다. 너는 신선하게 시작한다. 삶이 오늘 새롭고, 네가 새롭다. 너는 이 하루를 결코 전에 가진 적이 없다. 네가 심드렁해질 이유가 없다. 만약 네가 변화를 원한다면, 이것은 변화를 허용할 너의 날이다. 변화가 너의 수중에 있다. 하나의 변화의 삶이 너 앞에 있다. 변화의 삶이 너 앞에 있다.
변화가 너의 삶에서 일어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네가 변화로 문을 여는 것이다. 막는 것들을 치워라. 바로 앉아라. 우리가 출발한다.
오늘은 어떤 날도 너에게 전에 말하지 않았던, 너에게 말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날이 의미하는 것인데, 어떤 날도 재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이 고유하다. 만약 네가 다른 식으로 생각한다면, 너는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변화로의 너의 열림을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하다 할 수 없다. 변화는 네가 검열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그것인 것이다. 오늘 너를 위한 변화는 너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만약 네가 오늘 너에게 등기우편을 보내야 한다면, 너는 변화를 미연에 방지한다. 변화를 막는 것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하나의 알려진 것이다. 변화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하나의 수령자이다. 좋은 출발을 해라. 오늘 변화를 기대해라. 태양이 지기 전에 곧바로 올라가라.
자연히 너는 어떤 변화들을 다른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네가 변화로 더 많이 열릴수록, 너의 삶으로 들어올 변화가 더 많은 것을 초대할 것이다.
네가 변화로 둔감했었던 것이 매우 가능하다. 왤까? 네가 변화를 많이 환영할수록 네가 통제력의 확신을 원하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이들아, 너희가 알듯이, 너는 정말로 네가 너 자신의 도구들로 생각하는 것으로 남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끔 너의 아이디어들이 희박해진다. 흔들리게 되는 것은 네가 그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에 상관없이, 너의 피로한 시스템이 요하는 자극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네가 모험을 하기에 너무나 피곤해졌느냐?
가만히 머문다는 것은 없다. 가만히 머무는 것은 경계들을 따르는 것이다. 너 자신의 경계를 풀어라. 너는 과감히 그렇게 할 자유가 있다. 존재하는 것은 혁명적이 아니다. 지구상의 너의 삶에서 너는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추정해왔는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것은 급진적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고, 그리고 너는 “아, 그렇지”하고 깨닫는다.
네가 존재하기보다는 너 자신을 숨김으로써 권태로부터 달아났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너는 아마도 너로부터 숨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네가 정말로 누구인가의 진실이 되는 것의 두려움을 네가 가진 것과 같다. 너는 너의 바로 그 가슴의 바람인 우리의 통합으로부터 달아났을 수 있다.
네가 알듯이, 네가 피하는 것을 총알들이 아니다. 그것은 신God의 사랑이고, 너의 가슴 속의 모든 사랑인데, 마치 그것이 들어본 적 없는 발견인 것처럼, 마치 네가 쳐다보지도 않고 유보한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네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너는 삶으로부터 달아나는 문제에서 자동적일지도 모른다.
너는 선원의 삶이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삶이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누구를 위한 것이냐? 선원은 바다에서 항해한다. 그는 그의 바다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선원은 그의 운명이 험난한 바다/공해High Seas에 있을 때 습지에서 항해하지 않는다.
험난한 바다는 분명히 마른 땅이 아니다. 험난한 바다는 철렁거린다. 험난한 바다에서 너는 네가 무엇을 발견할지를 확신할 수 없다. 만약 네가 발견을 원한다면, 험난한 바다는 너를 위한 것이다.
너는 험난한 바다에서 숨을 수 없다. 너는 네가 바다사람이 아닌 체 할 수 없다. 너는 네가 태어나고 선원이 된 그 집의 난로 가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면서 머물 수 없다. 너는 모험으로 태어났고, 그것은 네가 새로운 수평선들을 위해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아무도 그 삶이 – 너의 삶이 – 그것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같은 것으로 머물 것이라고, 혹은 너의 삶이 표면에서 보였듯이 그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의 다정한 이들아, 선원의 삶은 너희를 위한 삶이다.
아, 자유여!
아, 자유여!
Ah, Freedom!
Heavenletter #5863. - God . December 13, 2016
http://heavenletters.org/ah-freedom.html
신이 말했다.
두려움을 폐기해라. 지구의 얼굴로부터 두려움을 폐기해라.
오, 두려움이 없는 삶이 무엇과 같아질지를 생각해봐라. 너희가 얼마나 자유롭게 될 것인가. 너희가 얼마나 기분 좋게 느낄 것인가. 너희는 숨을 쉴 것이다. 너희는 지구에서 춤을 출 것이다. 너희는 회전하고 빙빙 돌 것이다. 너의 춤을 보아라! 이것이 자유이다. 너희는 자유를 찾아왔는데, 너희가 그것의 다른 쪽을 보았을 수 있을 때에도 말이다. 너희는 심지어 자유를 옆 눈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자유는 네가 춤추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네가 전에 결코 춤을 추지 못했다 해도, 너는 지금 춤을 출 것이다. 너는 자유 속에서 한껏 즐길 것이다. 너는 또한 노래를 부를 것이다.
자유는 얼마나 요긴한 것인가. 자유는 너의 ‘열려라 깨Open, Sesame’이다. 그것은 너의 삶으로의 열쇠이다. 자유 속에 있지 않은 삶은 복종의 삶이다. 너 자신에게 봉사하는 삶의 자유를 주어라.
두려움 속에는 너는 받아들이기 위해 있다. 겁먹음은 탐욕을 만든다. 탐욕은 자유가 아니다. 탐욕은 너를 제한한다. 탐욕은 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의 공통적 두려움은 모두에게 줄 충분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탐욕은 두려움이다. 모자람은 두려움이다. 불행은 두려움이다.
자유는 진귀하다. 그래, 세상은 너희를 두려움으로 덮을 수 있고, 너희를 세상의 생각으로 계속 가둘 수 있다. 법률들이 자유롭기보다 제약적일 수 있고, 너희는 순응의 소용돌이 속에 갇힐 수 있다. 균형 잡는 행동이 무엇인가.
너는 어떻게 네게 기대된 기준인 것으로 찬사를 주면서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너는 법률을 깨뜨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너는 반역자가 되려고 의도하지 않는다. 반역자는 그 자신의 것보다 다른 이의 삶의 방식의 반응을 살핀다.
아무도 사슬에 묶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든 이는 생각할 그 자신의 방식을 원한다. 너를 그들의 방식으로 종속시키는 자들은 자유롭지 않다. 다른 이를 사슬로 묶는 자는 자유롭지 않다. 가끔 네가 확신하는 유일한 자유는 괴로워할 부담스러운 자유이다.
그것과 무엇이 있는가? 네가 괴로울 때 그것은 네가 심지어 너 자신에게도 표현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과 같다.
너는 어떤 크기로 맞추게 되어 있지 않다. 만약 네가 10호 짜리 구두를 신는다면, 더 작은 치수를 신는 것이 고통스럽다.
아마도 너는 맨발로 가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네가 묶이지 않은 세상에 사는 것을 얼마나 좋아할 것인가. 맨발로 풀밭을 달리는 것이 멋질 것이다. 모카신moccasins(북미 원주민들이 신던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납작한 신)을 신는 것이 또한 얼마나 멋질까. 자유롭게 달리기 위해.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네가 다른 이들의 생각을 따라야 함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러나 물론, 그것은 네가 또한 다른 이들을 자유롭게 허용함을 의미한다. 너는 유일한 자가 되기로 되어 있지 않다.
너는 다른 이들을 침해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러나 너는 자유롭기를 갈망한다. 너는 굴레 속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너희는 가끔 네가 자유와 그 자유가 의미하는 모든 책임감을 원하는지를 의문하느냐? 어떤 이상한 방식으로 묶는 사슬들이 또한 자유로울까? 흠, 너는 너의 어깨를 으쓱거릴 수 있다. 확실히 너희는 황폐와 전쟁이 자유롭지 않음을 알고 있다. 전쟁은 너희가 아는 가장 큰 부자유이다. 전쟁은 모든 이들을, 승자든 패배자이든, 똑같이 해친다. 몸속의 생명은, 너의 것이든 다른 이들의 것이든, 누구의 것이든 — 그처럼 단절시키기에는 너무나 소중하다. 그것은 하나의 낭비이다.
간수와 죄수가 똑같이 사슬에 묶여 있다. 어느 것도 세상의 의미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유가 너희의 뗄 수 없는 권리가 되는 이 자유에 대해선 어떤가?
사랑하는 이들아, 진실에서 자유는 사랑 속에 존재한다. 너희는 모든 종류의 장애물들 위로 올라가는데 자유롭다. 가장 큰 자유는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너를 자유롭게 한다. 너는 사랑으로 책임이 있다. 너 자신을 사랑해라, 그리고 너는 자유롭다. 다른 이들을 사랑해라, 그러면 너는 그들이 너의 생각들로 묶이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사랑은 자유롭게 해주는 것인데, 너희가 사랑의 자유롭게 해주는 그 본질을 알기만 했다면 말이다.
너희는 이제 사랑하는 법을 찾고 있다. 너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너 자신을 자유롭게 해라, 그런 다음 너는 모든 다른 이들을 사랑할 것이고, 그리고 모든 다른 이들이 방대한 사랑 속에서 너를 따를 것이다.
너는 존재하고 있다. 너는 사랑하는데 자유롭고, 사랑의 노래들을 부르는데 자유롭다. 사랑이 되어라. 사랑을 불러나. 사랑해라. 지금 사랑해라. 측정을 넘어서 사랑해라.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10026 신의 편지/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