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편지 / 나와 함께 가자 & 그것은 어쨌든 누구의 삶인가?
천국편지 / 나와 함께 가자
나와 함께 가자
Come with Me
Heavenletter #5904. - God . January 23, 2017
http://heavenletters.org/come-with-me.html
신이 말했다.
독립을 위한 너의 설비를 너 자신에게 상기시켜라. 너는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도움이 항상 필요하지 않다. 너는 정말로 사랑의 증거를 찾고 있을 수 있다. 그러한 필요성은 너의 최고의 이해 속에 있지 않다. 무력함만이 좌절감으로 이끌 수 있다.
가끔 지나친 풍요로운 도움을 주는 것이 네가 필요해지기 위한 필요성이 될 수 있고, 따라서 세상에 의해 잘 생각된 자로서, 세상에서 아주 특별하게 되는 자로서 서있을 너의 광대한 필요성이 될 수 있다. 크게 주는 자는 찬양과 칭송을 크게 필요한 자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너는 너무나 많은 가짐으로써 누군가를 이용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한 너는 너무나 많은 것을 줌으로써 누군가를 이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또한 너는 소위 다른 이들이라고 부르는 이들로부터 또한 도움을 받을 수 없기를 원하지 않는다.
힘이 네가 생각했던 것으로 또한 반대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지금, 또한 지금 그것에 대해 잊어버려라. 너는 네가 떼는 매 걸음을 측정하려고 하지 않는데, 측정과 분석이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네가 하나의 통찰력을 가진다면, 그 통찰력은 심어진 씨앗이고, 그것이 자랄 것이다. 너는 자랄 것이다.
삶은 하나의 방법이, 하나의 플랜이, 네가 따르는 하나의 지도가 되게 되어 있지 않으며, 그러나 자발적이다. 너 자신을 추측하지 마라. 너는 네가 길을 가면서 배울 것이다. 만약 네가 동쪽 대신에 서쪽으로 갔음을 발견한다면, 너는 예스 대신에 노를 말했거나 그 반대인데, 네가 무엇을 후회하든, 내버려 두어라.
너는 잘못된 방향에 대해 너 자신이나 다른 누구든 다치게 하지 않는다. 모든 시간에 삶의 무게를 달지 마라. 무거운 무언가가 너를 내려누르게 하지 마라. 일이 벌어진 후에 그처럼 심하게 너의 삶을 살지 마라. 길을 따라 가면서 너의 삶을 더 많이 살아라, 네가 어제 있었던 곳으로 덜 돌아가면서. 너는 후회들을 유지하는데 멋지지 않다. 또한 너는 죄책감을 전공하는데 멋지지 않다. 크든 작든 후회들을 끝내라. 죄책감은 낡은 피부 딱지이다. 너는 죄책감을 축적하게 되어 있지 않다. 후회들과 죄책감과 끝내라. 이것은 네가 앞으로 가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다른 방법이다. 앞으로Forward가 가야할 유일한 방향이다.
이것은 “나와 함께 가자Come with Me”와 똑같은 지시이다.
태양이 떠오르고, 태양이 진다.
태양은 “어제, 난 구름들이 나의 빛을 덮게 했어. 난 이게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편이 좋아” 하고 생각지 않는다. 아니, 물론 아니다, 태양은 어제로 매달리지도, 그것을 되돌리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태양이 질 때, 태양은 그의 오류들을 세지 않는다. 태양은 자기-판단의 양식으로 살지 않는다. 태양은 지나간 순간에게 굿바이로 손을 흔들고, 태양은 다음 순간 앞에서 지나간다. 태양은 계속 길을 따라 굴러가며, 그의 빛을 빛낸다.
나는 내가 태양에서 요청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너에게 요청하지 않는다. 나는 너와 태양이 같은 것을 하기를 요청한다. 너의 빛을 빛내라고. 내가 태양에게 요청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너에게 요청하겠는가?
너는 태양으로 자라고 있다. 태양은 성공하기 위해 그 자신을 채찍질 하지 않는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 태양은 그 자신이나 다른 이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태양은 빛난다.
너 자신에 대한 너의 기대들이 너 자신을 고갈시킬 수 있다. 너는 너 자신의 채찍질 하는 소년이다. 너는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보다 결과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길옆에 핀 꽃들을 찾아보아라. 보이는 것들을 들이마시고, 새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라.
너는 삶을 살기 위해 있는데, 그것에 점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삶이 너를 데려가는 곳으로 가라, 너의 시각을 기쁨으로 맞추어라. 앞서 달리지도, 너의 발을 질질 끌지도 마라. 너는 나에 대한 봉사 속에 있다. 너는 명성이나 행운을 쫓고 있지 않다. 너는 너의 바로 그 자신인 나에게로 도달하고 있다.
그것은 어쨌든 누구의 삶인가?
그것은 어쨌든 누구의 삶인가?
Whose Life Is It Anyway?
Heavenletter #5905. - God . January 24, 2017
http://heavenletters.org/whose-life-is-it-anyway.html
신이 말했다.
만약 네가 하나의 총체성으로서, 삶으로 무엇을 만들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의 현재 삶으로 무엇을 만들지를 알지 못한다면 – 찬성하든 반대하든, 네가 이 시간과 장소로 어떻게 도달했는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말인데 – 그리고 여기로부터 네가 어디로 가는지를 확신하지 못한다면, 너는 삶을 재편하면서 너 자신을 주장하느냐, 아니면 너는 “좋아, 삶이여, 너의 길을 가거라” 하고 말할 수 있느냐? 가만히 머무는 것은 너의 일이 아니며, 오늘이나 내일이 가져올 것에 대해 소란을 피우는 것 또한 너의 일이 아니다.
삶은 그것인 것이고, 삶은 또한 네가 그것을 보는 방법이다. 너는 이 두 가지 생각들과 친숙하다. 너는 의견의 차이점들을 잘 알고 있다.
너는 바나나를 좋아하지만, 너의 친구는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의 친구는 언젠가manana[스페인어]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너는 아침에 몸을 뒤집으면서, 잠자기를 더 좋아할 수 있다.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 평화가 될 수 있는 반면, 너는 소란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
너는 대양을 사랑할 수 있고, 너는 중서부에 살고 있다. 너는 열대지방을 사랑할 수 있고, 너는 알래스카에 살고 있다. 너는 높은 산에서 살 수 있거나 너는 전기가 없는 곳에서, 등등에서 살 수 있다. 너는 하나의 장소에서 살 수 있거나, 너는 집 없이 살 수 있다.
네가 어디에 있든, 그것은 네가 있는 듯이 보이는 곳이다. 너는 네가 이 순간에 살고 있는 그 삶을 살고 있다. 너는 네가 가질 아이스크림의 맛의 선택을 당연히 가질 수 있고, 너는 또한 아이스크림을 전혀 먹지 않는 선택을 가지고 있다. 너는 TV를 시청할 선택을 가질 수 있다. 너는 네가 어디에 사는지, 얼마나 많은 돈을 네가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전혀 TV를 살 선택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동시에 너는 어쨌든 네가 있는 곳에 착륙했음을 깨달으며, 너는 네가 그 문제에서 많은 선택을 정말로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어쨌든 너는 공간과 시간의 이번 경우의 삶에서 네가 지금 있는 곳으로 추진되었다. 가끔 너는 네가 어떤 선택을 조금이라도 하는지를 의문한다. 너는 만약 네가 사는 삶이 운명으로 정해져있는지를 의문할 수 있다. 네가 지금 너 자신을 발견하는 곳으로 몰아진 것처럼 너에게 보일 수 있다. 삶이 닥친다.
너는 네가 결혼한 사람과 결혼했지만, 너는 정말로 선택했느냐? 너는 결혼을 떠났을 수 있거나, 아니면 그것 안에 머물러 있었을 수 있다. 이것이 정말로 너의 선택이었는가, 아니면 네가 조금이라도 선택을 가졌었는가?
너는 자유 의지에 대해 의문한다. 너는 정말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삶이 정말로 하나의 설정인가? 너는 스케줄 된 대로 출발하게 된 어떤 종류의 장치인가?
너는 네가 말하는 말들을 결정하느냐? 가끔 네가 발언권을 갖지 않은 말들이 너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듯 보인다. 말들이 그들 자신의 의지로 뛰어나온다. 어느 경우든, 가장 확실하게, 너의 삶은 너에게 하나의 놀람이다.
가끔 너는 삶에서 너의 관계가 정말로 무엇인지를 의문하고, 너는 반대하는데, 마치 모든 실용적인 목적들로 네가 한 아이로서 납치되었다고 말이다. 너는 네가 누구인지, 혹은 네가 무엇인지를 정말로 모른다.
동시에 너는 삶에 대한 모든 시끌벅적이 무엇 때문인지를 의문한다. 삶에 대한 큰일이 어쨌든 무엇인가? 왜 너는 그처럼 단단히 삶에 매달리는가, 너의 삶이 너의 가슴의 바람이 아닌 때에도? 왜 너의 삶이 너의 가슴의 바람이 아닌가?
삶은 그러한 하나의 프로젝트이다. 어떤 의미로, 너는 너의 모든 것을 그것으로 주며, 다른 때들에서는 너는 단지 삶을 목격하고 그 운동들을 통해가는 듯이 보인다. 너의 발언권이 없이, 너는 여기저기로 가며, 너는 네가 누구인지, 혹은 네가 어디 있는지 – 네가 거기 어떻게 도달했는지는 고사하고 – 에 대해 정말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어떤 의미로, 이것은 모두 여기도, 저기도 아니다.
이것이 단지 삶이 되기로 된 방식이 아님을, 네가 이런저런 길을 따라 갈 때 삶을 발견한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아는가. 어느 경우든, 삶은 너의 눈앞에서 변한다.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10140 신의 편지/1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