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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 편 지

+ 천국편지 / 네가 노래할 때 너는 오직 노래 불러질 수 있는 완전함 속에서 노래한다 & 삶을 움직이는 자

 

 

 

천국편지 /

네가 노래할 때 너는 오직 노래 불러질 수 있는

완전함 속에서 노래한다



네가 노래할 때 너는 오직 노래 불러질 수 있는 완전함 속에서 노래한다

You Sing in a Wholeness That Can on ly Be Sung as You Sing It


Heavenletter #6015. - God

Published on : May 14, 2017

http://heavenletters.org/you-sing-in-a-wholeness-that-can-only-be-sung-as-you-sing-it.html




신이 말했다.


무-생각no thought의 순간이 있다. 무-생각은 생명의 가슴이 그 자신을 발견하거나 발굴하는 곳에, 혹은 그 자신을 넘어가는 곳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이 무-시간non-time에 존재하는 시간이 없다. 춤추며 돌아다니는 에고도 없다. 너희는 정확히 이런 무-시간들에, 확실히 시간이 없는 곳에 있다.


일반적 목적을 위해, 네가 생각 위에 있을 때 — 그것이 네가 생각 아래 있거나 생각 밖에 있는 것인지를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지구상의 아무도 네가 단단히 무한 속에 있도록 수립하기 위해 너에게 의심을 넘어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의심 없이 너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이들아, 무한 속에는 등을 기댈 등의자가 없다. 네가 무한 속에 있을 때, 너는 다른 어디에도 있지 않은데, 심지어 네가 너의 일상생활에서 이것에 대한 너의 인식 없이 있을 수 있을 때에도 말이다.


너희가 무한 속에 있을 때, 너희는 단지 있으며, 그것은 생명의 이질적인 조각으로 네가 존재하는 곳에서 네가 존재를 넘어 유독 있다고 말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생각의 앎이 없고, 또한 무-생각no thought의 앎도 없다. 너는 생각을 넘어있다. 우리는 네가 무-생각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는 무-생각의 가장 취약성 위에 있는데, 그것에 아래쪽이 없을 때에 말이다. 너는 말하자면 생각의 지배자, 아직 담겨지지 않은 생각의 지배자, 아마 풀렸거나, 능가되었거나, 대체된, 혹은 고요한 호수에서 아직 표면화하지 않은, 아직 보이지 않은, 아직 보일 수 없고, 바람직하다고, 고려되거나, 상상되지도 않은, 혹은 무언가로서 그 자신의 자기의식으로 존재할 수 없는 생각의 지배자이다.


이 무-생각non-thought은 그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알려졌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수단으로 그 자신을 묘사할 필요가 없는 하나의 무-생각으로서 아마 묘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앎은 언어의 관습 없이 그 자신의 앎 속에 깊숙이 있다. 이것은 자주 세상에서의 인간의 배열을 넘어간다.


네가 무-생각을 어느 정도로 설정하자마자, 그것은 해체된다. 그것이 약화된다. 그것이 순수한 생각Pure Thought으로 올 때 ‘그것에 대한no about it’ 것이 없는데, 만약 실로 우리가 조금이라고 순수한 생각을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순수한 생각Pure Thought은 순수하거나, 아니면 순수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넘어 있으며 – 네가 사용할 수 있는 무슨 전치사이든 – 온통 생각을 넘어 있다. 순수한 생각은 분별될 수 있는 생각보다 더 위대하다. 너희는 생각 속에 깊이 있기보다는 의미 속에 깊이 있다.


네가 노래할 때, 너는 네가 노래할 때 단지 노래 불러질 수 있는 완전함 속에서 노래한다. 그러므로 너는 그것을 배열하지 않는다. 노래하는 것은 너의 가슴의 내용들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간다. 묘사하는 것은 실제성과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것은 단지 그것이다. 실제성은 그 실제성이 망각으로 사라지지 않고는 묘사될 수 없다.


그래, 나는 우리가 무-생각으로 부를 수 있는 이것을 의문하는 자로서 너에게 묘사하는데, 끊임없이 생각으로, 잠속에서도, 꿈속에서도, 심지어 무언가를 전혀 기억할 수 없거나, 개요를 그릴 수 없거나, 게재할 수 없을 때에도 생각으로 끊임없이 추구되는 바로 그 사람인 너에게 말이다.


나는 무의식적인 생각이나 잠재의식적이거나 초의식적인 생각을 의미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아직 생각되지 않은 생각을 단지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 자신이 되는 것Being Its Self, 의식의 알맹이Kernel of Consciousness와 같은 것이다. 의식의 알맹이는 도토리 속에 깊이 넣어진 씨앗 같으며, 비전을 넘어가지만, 단지 그처럼 존재한다.


이 무-장소non-place에서는, 말들은 단지 더듬거리고 사라지는데 — 아, 언어를 넘어서, 말들을 넘어서, 어느 비슷한 유사성을 넘어서 말이다.


우리는 하나의 의식의 상태State of Consciousness, 앎의 상태State of Knowingness에 대해 말하고 있다. 너는 그 자신의 상태State its Self에 있거나, 아니면 너는 그 경계들 밖에 있는데, 비록 그 요점이 이 상태가 담겨지는 데는 경계들이 없다 해도 말이다. 우리는 더 이상 경계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경계가 지어진 상태에 대해 말한다. 이 상태는 정확히 집어낼 수 없고, 표시를 없앨 수도, 심지어 경계를 지울 수도 없다. 이 상태는 생각으로 분석되는 것을 넘어가는데, 분석하는 것이 생각을 용해시킬 때 말이다. 어떤 것들은 하나의 등식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데, 그 시점에서 네가 분류하기를 바랐던 것을 벗어났을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잃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의미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의미로서 너희는 논리를 의미한다. 우리는 논리를 넘어 말하고 있고, 즉각성과 완전함의 땅Land of Instancy and Wholeness으로 들어가며, 생각으로부터 뱉어지는 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땅으로 말이다. 생각은 주형에 맞도록 만들어질 수 없는데, 진실이 주형이 없다는 것일 때 말이다.


사랑하는 이들아, 완전함wholeness은 이런 완전함이나 저런 완전함으로서 지정될 수 없다. 완전함은 있으며, 아니면 그것은 완전함이 아니다. 완전한 이야기Whole story는 완전함Wholeness이 있다는 것이지만, 완전함을 따라갈 수 있는 묘사가 없다는 것이다. 묘사는 단지 뒤처질 수 있다.


너희는 전적으로 그것을 잘 생각해볼 수 없다.



 


삶을 움직이는 자


삶을 움직이는 자

The Mover of Life


Heavenletter #6016. - God

Published on : May 15, 2017

http://heavenletters.org/the-mover-of-life.html



신이 말했다.


질문이 떠오른다.


누가 삶의 움직이는 자이냐?


내가 그 행하는 자Doer라고 말해졌다. 너는 내가 행하는 그 행위Deed냐? 너와 너의 삶이 운명 지어졌느냐? 너는 너의 결정들을 만드느냐? 정말로?


너의 팔을 움직이고 지구를 걷는 자가 너이냐, 아니면 너는 너 자신의 대리인이냐? 가끔 너는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필요 없고, 이유 없고, 너의 요소 밖에 있으며, 너 자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듯이 느낄 수 있다.


너의 심장이 고동친다. 너의 가슴이 묻는다.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인가? 내가 누구인가? 내가 있는가? 여기 이 가끔 신God이 버린 듯이 보이는 장소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너는 네가 정말로 여기나, 어딘가에 있는가를, 혹은 네가 조금이라도 존재하는가를 의문한다. 너는 네가 환영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이 또한 진실이며 — 그러나 너의 성격은 더욱 하나의 주제와 같다.


네가 알고 확신하는 것은 만약 네가 정말로 여기 있을 수 있었다면, 혹은 정말로 그 결정자가 아니었다면, 네가 해지할 많은 결정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결정은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데, 네가 지각하는 방법을 네가 바꾸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바라는 무언가를 빼내거나 손볼 테지만, 너는 그렇게 할 수 없는데, 과거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며, 비록 그것이 있었다 해도 말이다. 어디에서 너는 과거를 찾고, 그것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향을 가지며, 그것을 돌아다니느냐? 아무 데도 없다. 오, 확실히 이야기들 안에는 있다. 부디 내가 이야기들을 부신다고 생각지 마라. 이야기들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전체 그림을 다르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스타시스(중단)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끝난 행위도, 시작도, 행위로의 끝도 없다. 너 앞에 너의 신념을 넘어 확대된 하나의 길이 있다. 네가 깊숙이 볼 수 있는 곳을 들여다보고, 너의 큰 자신이 올라가서 녹는 것을 보는 나의 눈이 또한 있는데, 네가 너의 큰 자신의 바로 그 빛인 신God의 빛을 함께 세상으로 현신할 때 말이다.


삶에서 너는 조리법 없이 국을 만들지만, 너를 포옹하고 길을 가리키는 신God이 있으며, 그러나 너는 항상 확신하지 못한다. 네가 확신할 때에도, 너는 신호를 놓칠 수 있다. 너는 항상 무엇이 좋은지, 옳은지를 알지 못하는데, 사실로 생각되는 것이 있을 후에도 말이다. 하나의 출현이 바로 너의 눈앞에서 변할 수 있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네가 행위나 생각 때문에 용서 받는 것이 아니고, 또한 전혀 무언가에 대해 용서받는 것이 아닌데, 나의 어린이들 가운데 누가 감히 판단하거나 내가 가지 않은 곳을 터덜터덜 가는가? 간단한 것이 그다지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 복잡한 것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을 수 있다.


너는 하나의 생각을 가진다. 세상에서 하나의 생각이 여기 이 구석에서는 진실일 수 있지만, 네가 누구인가, 혹은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가에 따라 저기 저 구석에서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세상은 상황적이고, 가끔은 한 발 없이 서 있으며, 그러나 그것이 있는데 — 너 앞에 끌어올려지고 속여 팔아진 그 세상 말이다.


모든 세상이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이 어떤 문제가 되느냐?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며, 가끔은 너무나 문제가 된다. 책들이나 영화들 속의 이야기들조차 문제가 되며, 너는 웃거나 울며, 너는 시작하거나 끝내는데, 그러나 우리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고, 끝나지 않았다고, 중단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여전히 어쨌든 그 자신을 추진하고, 단지 절벽에서 사라진 듯 보디는 하나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가끔 삶은 가까이 있는 듯이 보이고, 가끔 삶은 멀리 있는 듯이 보인다. 가끔 삶은 너의 손닿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이고, 가끔 너는 그것을 볼 수조차 없다.


네가 슬퍼할 수 있는 같은 시간에, 삶은 위대하고, 너는 삶Life이란 한 음절 이름을 가진 - 하나의 기적으로 또한 불릴 수 있고, 경계를 모르는 하나의 전례 없는 기적인 – 하나의 비할 데 없는 기회의 한 가운데 있다.



번역출처: AH.Korea http://www.abundanthopekorea.net/board2_3/10452 신의 편지/1410